
디스콰이엇에서 퇴사한 지, 싱글이 된 지, 창업한 지 두 달이 되었다. 출생 이후 가장 많이 돌아다녔다. 가장 큰 감정의 폭을 겪었고, 가장 많이 춤췄고, 명함 통의 명함을 가장 빠르게 소진했다. 3주 전에는 첫 외주 작업 계약을 받았고, 지난 주에는 우주가 놓치고 있던 회계 작업들을 해 500만원 정도를 되찾았다. 태어난 이래 가장 많은 에너지를 얻고, 태우며 살고 있지만 지난 주에는 나 자신에게 뭔가 답답함을 느꼈다.
1. 가장 두려운 것 - 창업가 놀이로 끝낼 수는 없다.
서울에서 IT 스타트업을 창업하면 나이가 어리던 학벌이 어떻던 실력이 어떻던 모두 대표님이라고 불러 준다. 또 ‘스타트업’이라는 단어 아래에서 모두 하나가 되어 네트워킹하기 좋다. 사람들은 만남과 도움을 주고받는 것에 언제나 열려 있다. 이곳에서는 인적 자원이 귀하기 때문에, 어디에 가서든 환영과 대접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매주 네트워킹 파티가 열린다.
지난 일년 간, 나는 디스콰이엇에서 네트워킹 파티를 여는 사람이었다. 그러면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다. 그 안에는 창업에 어떤 정해진 코스와 루트가 있고, 그걸 따라 열심히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이 네트워킹도 열심히 하고 사무실에서 먹고 자며 열심히 하고 있다고 한다. 내 부족한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빠르게 실행하며 배운 점을 나눠주시는 분도 있었고, 만날 때마다 매번 같은 답변을 되풀이하는 분도 있었다. 지금의 내 모습은 어떤 부류에 속할까? 딱 창업가 놀이에 젖어버린 공동창업자 같아 보인다. 에너지는 많이, 돈도 많이 쓰고 있지만 누군가 ‘그래서 너 하는 게 뭐냐’고 말했을 때 내 안의 깊은 생각을 끌어내 답변하지 못하고 있다. 일 밖의 것들에 정신을 뺏겨서 사업하는 것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고.
2. 대장간의 새로운 멤버 용욱이를 만나고
디스콰이엇의 대장간 멤버 모집 글을 통해 커피챗 신청이 들어와서 용욱이를 만났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여태까지 본 사람 중 가장 흥미로운 배경을 가진 친구이더라(지금은 카카오벤처스 투자팀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한시간 반 넘게 쉬지않고 떠들고 나서, 내 친구를 7명이나 소개해 줬다. 내가 소개해 준 하경이랑은 벌써 동업자 사이가 되었다고 한다. 지난 목요일에도 용욱이와 Y-VENTURES의 선우님, 용진님을 함께 만났다. 창업가들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일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나보다 한참 늦게 태어났지만 훨씬 폼 좋은 세명을 만나 이야기하다 보니 영감과 자극을 받아서 젓가락을 내려놓고 사무실로 다시 뛰어왔다.
월요일 대장간 오픈 위클리 데이가 끝나고 용욱이의 입주가 결정되었다. 용욱이는 그주 토요일 바로 짐을 싸서 대장간으로 들어왔다. 용욱이가 입주한 날, 하우스에 있던 태훈, 태영이와 용욱이가 점심을 먹으며 하는 대화를 들었다. 나는 한 단어에 꽂혔는데 그건 바로 ‘엣지’ 였다. ‘이 팀은, 이 창업가는 어떤 엣지를 가지고 있는가’ 라고 할 때의 엣지 말이다. 엣지는 종종 그의 대학 전공에서 비롯하기도 하고, 성장기 주변 환경에서 비롯되거나, 창업자의 성향 자체가 엣지를 만들기도 한다. 나는 어떤 날카로운 엣지를 만들어가고 있을까?
3. 그리다의 Go-To-Market을 하면서
원래는 디스콰이엇을 퇴사하고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하려고 했었다. 커뮤니티가 돈이 안 된다지만, 나는 각기 다른 유형의 커뮤니티 3개 정도를 만들고 그 커뮤니티에 필요한 앱을 만드려고 했었다. 커뮤니티를 테스트 베드로 활용해 앱을 발전시키고 앱으로 Scale-up을 하는 아이디어였다. 각각의 커뮤니티에서는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돈 정도만 받고. 내가 자신있고 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던 와중 매력적인 공동창업자 우주를 만나(디스콰이엇을 통해 만난 400+명의 사람들 중 이 친구만 유일하게 좀 천재 같았다) 낭만 있는 걸 해보자며 소프트웨어 컴퍼니를 시작했다. 얘는 천재 프로덕트 메이커였고 나는 GTM을 1년동안 해왔으니 자연스럽게 내 역할은 GTM이 되었다. 시작할 때만 해도 다시 코드를 하게 될 줄 알았지만 지난 1.5개월간 내가 해온 역할은 세일즈/마케팅을 겸하는 오퍼레이션 매니저에 가까웠다. 우주가 프로덕트 만드는 속도가 말도 안 되게 빨랐다. 그리고 믿을만 하기도 했고. 그래서 회사의 운영에 필요한 잡무를 처리하고, 커뮤니티를 만들고 GTM 하는 것에 집중했다.
그런데 스타트업 피플들만 대하다가 디자이너를 대상으로 커뮤니티를 만들어 고객을 유치하고 관계를 만들어 가려고 하니, 디자인에 대한 내 진정성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스콰이엇에서 사업 개발자로서 나는 메이커로서의 진정성을 십분 발휘했다. 개발자를 만날 땐 내 코드를 보여줬고, 프로덕트 디자이너를 만날 땐 내 디자인 작업물들을, PO를 만나서는 비즈니스 이야기를 했다. 지금은 아닌 UI/UX를 다루는 디자이너들보다는 프린팅/비주얼 디자인을 하는 디자이너들을 타겟하는 제품을 만들고 있다. 당연히 커뮤니티도 그들을 향해 만들어야 한다. 타겟하는 디자이너들을 대상으로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나도 ‘다시’ 그래픽 디자이너가 되어야 한다.
4. 나의 엣지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
이 질문은 비단 커리어에 국한된 질문이 아니다. 삶과 관계에 영향을 주는 질문이기도 하다. 나와 다른 사람을 구분짓는 나만의 USP(unique selling point)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좀 웃기지만 특정 상황을 가정해서 예시를 들어보자. 내가 클럽에 갔다. 180cm의 신장을 가진 나는 키가 좀 큰 편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막 반할만큼 크진 않다. 준수하게 생기긴 했지만 잘생기진 않았다. 근데 나는 음악을 듣고 즐기는 것에는 자신이 있다. 그리고 열심히 태닝한 피부 색깔이나 예쁜 몸에는 자신이 있다. 이게 내 엣지가 되겠지. 아마도 나는 상의를 벗어던지고 음악을 즐기며 신나게 춤을 출 것이다(실제로도 그럴수..도? ㅋㅋ) 내가 시장에서 최고의 경쟁력(=엣지)을 만들 방법은 무엇일까?
추석 전까지, 앞으로 한 3주 간은 팀에 필요한 GTM/Operations 업무를 계속하되 생산성을 높이고 시간을 확보해서 Design Tech와 관련된 리서치와 메이킹을 빡세게 해야겠다. 대장간에 들어오면서 내 꿈은 사회의 예술적 다양성을 높이는 것이라고 했다. 그 꿈에 가깝게 다가갈 때가 지금이 아닌가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