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요일 디스콰이엇 도언님을 만났다. 회사 얘기 진로 얘기 하다가 ‘종한님 미스치프같은거 하면 잘할 것 같아요. 전 전시 보고 왔어요’ 라고 말씀하서 드디어 보러갔다. 나는 원래 홍대병 같은 심보가 있어서 너무 유명해진 건 잘 안 가는데.. 내가 제일 존경하는 사람 중 한 명인 도언님이 말씀하셨으니 다녀왔다. 아래는 전시 보면서 든 생각 3가지.
1/ 얘네 진짜 킹받는다
계속해서 팬들을 골려 주려고 하는 게 보여서 재밌었다. 딱 떠오른 건 침착맨의 이미지. 팬들이랑 서로 놀리는 느낌. 가죽 가방에 Made in Italy라고 박아놓았는데 알고 보니 미국 텍사스의 이탈리라는 동네에서 만들거나, ‘나 얼마짜리 티셔츠 입었어’를 보여주려는 요즘의 풍토를 비꼬기 위해 그래픽 티셔츠를 만드는데 모든 요소가 똑같고 $5, $250, $999 라고 적힌 숫자만 다르게 하고, 실제 그 가격으로 판매했다니.. ‘이래도 살거야?’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다 식 유머가 많았다. 우리는 종종 어이없는 아이디어 말하기 대회를 연다. 서브웨이처럼 커스텀으로 만들어주는 붕어빵 가게를 열자던가 하는.. 얘네가 만든 게 다 그런 것들이었다. 윤활 스프레이인 WD-40 향의 향수를 만든다거나.. (맡아봤는데 향 진짜 비슷했다. 그냥 WD-40 자체라고 해도 믿을 듯) 모스치노는 향이 향수스럽기라도 하지.. 아이디어는 어이없고 그걸 실제로 실행할 만큼 짓궃었다.
2/ 얘넨 작동하는 미술을 하는구나.. 다음 세대의 앤디워홀 같다.
앤디 워홀은 레디메이드와 에디션 개념을 이용해 팝아트라는 장르를 만들었다. (브리오 박스, 캠벨 수프, 마릴린 먼로 등) 미스치프도 비슷한 걸 했음. 워홀 작품의 가짜 복제본을 만들고..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을 조각내서 팔았다. 상업화된 뱅크시 같기도 하다. 규칙을 가지고 수천가지로 populate된 NFT작품이 팔리는 시대를 살아와서 그런지 이들의 행보가 더 와닿는다.
작품이 제작되면 끝나는 게 아니라 작품을 판매하고 소송에 걸리거나 판매하는 과정에서, 대중이 참여하는 과정을 작품으로 여기는 게 ‘작동하는 미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스로부터 상표권/디자인권 소송 걸리고 나서 자랑스럽게 ‘작품이 소송 중이라 문서를 대신 전시합니다’ 라고 한 것도 웃겼음.
키치하게 만들면서 풍자하는 걸 세련되게 해냈는데 다음 2가지 조건을 충족해서이다:
1) 미술적 퀄리티를 충족할 것 - 특정 브랜드의 상표를 활용해 패러디한 작품을 만든다고 했을 때, 상표가 없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퀄리티 높은 작업들이었다. 예를 들어 현미경으로 봐야 하는 사이즈로 제작한 초소형 루이비통 백. 루이비통 아니었어도 기발한 아이디어이고, 잘 만들어서 충분히 가치 있음.
2) 비꼬는 방식이 직관적이고 이해하기 쉬울 것 - 나는 현대미술 전시를 즐겨 보곤 하는데 가끔 좀 어려운 작업들이 있다. 좀 각색을 해서 설명하자면 아프리카 어느 지역의 공기를 비닐봉지에 담아왔는데 봉지에 담은 시각이 다른 게 지역 설화와 연결되어 의미가 있고, 한국으로 옮겨오는 과정에서 발생한 법률 이슈는 사실 어떤 걸 상징하는 거라는 식의.. 가끔 어려운 작업들이 있다. 반면에 미스치프는 매우 직관적이고, 누구나 10초만 소개글을 읽어보면 빵 터지면서 옆에 있는 사람에게 설명해줄 수 있었다.
3/ 얘네 BM 뭐지?
전시 설명에 의하면 미스치프는 콜렉티브. 나도 언젠가 콜렉티브라는 개념에 꽂혀서 Higher Definition이라는 프로젝트 기반 학습 콜렉티브를 만들어 본 적이 있다. 콜렉티브는 자율적으로 뭉치고 흩어지는 창작 집단을 뜻한다. 사람이 꽤 많이 소속되어 있더라. 프로젝트마다 숙련된 작업자들이랑 함께 협업할 걸 생각하니까 재미있을 것 같았다. 같이 아이디어 내고.
Highsnobiety에 의하면 이들의 비즈니스모델은 작품을 판매하거나 브랜드와의 협업 프로젝트를 하는 것이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피치스 같은 거지. 콜라보 다양하게 하고, 콘텐츠 만들고, 근데 얘넨 단순히 굿즈가 아닌 가치에 대한 장난을 쳐서 ‘작품’으로 팔고.. 열성 팬 집단도 있다.
결론
왜 도언님이 내가 재밌어할거라고 생각했는지 이해했다. 보면서 계속 질투가 났다!! 왜냐면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걸 이미 너무 잘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이 한 건 기존의 소비 생태계의 어떤 요소를 조금 비틀어서 기존의 기술자들을 데리고 비슷한데 완전 다른 일을 한 것이다. 소송당한 걸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이 능청스러움과 여유. 그리고 우리가 만든 건 상품이면 작품이라고 얘기하는 뻔뻔함. 다른 현대 미술과는 다르게 충격적이거나 심오하지 않고 웃음을 일키는 적절한 수위조절. 근데 심지어 잘 해. 이러면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잖아.
만간 재미있는 친구들을 모아서 비슷한(개념적으로 비슷한) 작업들을 해볼 것 같은데, 위에 언급한 원칙들을 떠올릴 수 있도록 해 주었다. 큰 영감 받아 갑니다 선배님들.
재밌게 읽었어요 전시 대신 다녀온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