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미국에서 살다 온 적 있냐는 질문을 받는다. 영어 발음이 좋다거나 제스쳐가 크다거나 옷을 교포처럼 입어서 물어봤다고. 미국에는 한 번도 와본적 없었다. 해외로 학생들을 많이 보내는 자사고 진학에 실패한 이후, 고등학생 시절 아이비리그 투어라도 가려다가 불발됐었고, 대학은 한국에서 갔고, 코로나 터져서 학교에서 보내주는 실리콘밸리 캠프도 zoom으로 갔다(?? ㅋㅋ 진짜 줌으로 산호세 대학 사람들 만났다. 원래는 선발되면 진짜 산호세에 가서 2주간 합숙하는 캠프였다.)
난생 처음 북미 땅을 밟으며
그러다 이번에 가족 여행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 -> 캐나다 캘거리를 오게 되었다. 샌프란 국제공항에 내려서 호텔 셔틀버스를 기다리며 공항을 굽어치는 도로들과, 차들, 사람들, 표지판들을 멍 때리며 보는데 왠지 모를 편안함을 느꼈다. 여긴 내 타입이었다. 한달 전에 다녀온 일본이랑 대조되었다. 힘 세고 큰 차들, 길게 뻗은 도로, 먼저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 물론 나는 아시아인인게 자랑스럽다. 그냥 여기 분위기가 좋다.
운 좋게 엄마의 친구분 집에서 며칠 지내게 되었다. 여긴 땅이 넓다. 타운하우스나 단독주택이 많다. 시내 중심지에 사는 싱글들은 아파트(콘도)에 많이 살고 교외로 나올수록 타운하우스나 단독 주택에 많이 산다. 교외의 상가들은 차로 접근할 수 있게 되어있다. 이천이나 여주에 가면 있는 프리미엄 아울렛 같다. 넓은 지상 주차장과 큰 상가 건물들이 있다. 엄마 친구분의 단독주택에 머물다 보니 마당과 차고가 있는 이런 환경이 개인주의를 만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여기서 내 공간과 물건은 내가 가꾸고 지켜야 한다.
어떻게 살고 싶은가?
샌프란 호텔에서 사흘, 캐나다 캘거리의 이모들 집에서 나흘, 캘거리 다운타운의 에어비엔비에서 혼자 사흘을 지내며 머무는 공간과 라이프스타일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되었다. 나는 어떻게 지내고 싶은가?
새로운 사람들 만나는 게 좋다. 에너지와 마음 맞는 사람들과 더 깊은 교류를 하되, 하고자 하는 일이 같다면 나와 조금 달라도 포용하려 한다. 그리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로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고 싶다. 요즘 일하는 공간이 마음에 든다. 매주 하루는 한 회사의 사무실에 출근해서 스터디를 하고, 나머지 요일은 프리랜서 친구들과 함께 쓰는 라운지인 ‘히히홈’에 가서 내가 좋아하는 셋업의 책상에서 일을 한다. 앉았다가 섰다가, 음악을 크게 틀었다가… 밤에 혼자 있으면 디제잉 셋도 만든다. 친구들과 같이 크게 음악을 들으며 작업하면 기분이 좋다. 앞으로도 먹고 자고 일하고 운동하는 공간들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쉐어하고자 한다.
돈 벌기
지난 봄부터 AI와 함께 소프트웨어 개발을 다시 시작하면서 몇가지 프리랜싱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작년 말 다니던 회사에서 쫓겨나고 불쌍한 상황에 처해 있다가, 다시 돈을 좀 벌기 시작하니 자신감이 많이 올라왔다. 역시 자신감의 크기는 사인파를 그린다. 좋을 때도 있고 안좋을 때도 있고..
돈을 받으면, 회사의 직원으로던 외주 개발자로던 받은 돈의 3배 가치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족스러운 프로젝트도 있고 솔직히 그렇지 못한 것도 있다. 시간을 많이 넣으면 결과물이 좋아진다. 그래서 시간 관리, 감정 관리를 잘 해야 한다. 난 아직 종종 일정 잘못 잡아서 밤 새고 어쩔 줄 몰라하다가 퀄리티 못 내는 초짜다. 그나마 21살-23살 시절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다.
원래는 이번 여름에 Community First Project라는 회사 이름으로 소셜-라이프스타일 앱을 출시할 계획이었으나 다른 팀의 일에 참여하다가 거의 진행을 못 시켰다. 내 이름으로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고, 그걸로 생계를 유지할 만큼 돈을 벌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 한국에 돌아가자마자 일 많이 하면서 요 부분에 대해 고민해보자.
사업
사업을 하고 싶다. 내 사업을 하고 싶다. 나는 자라면서 많은 기회를 얻었고 사랑도 많이 받았다. 그래서 내 안에 사랑이 많다. 이걸 나누고 싶다. 이걸 가장 적극적으로 하는 방법은 내 사업을 하는 것이라 생각.
내 안에는 비즈니스를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다만 성격이 쫄보라 이십 대 중반이 되어서도 한번도 리더로서 제대로된 창업을 해본 적이 없다. 투자를 받고 매출을 내는 사업을 해야 하는 이유를 최근에 와서야 깨달았다. 지금까지는 번 돈을 족족 새로운 경험을 하는 데, 또는 대장간 친구들과의 삶을 유지하는 데 써오다가, 최근에 첫 자산 투자를 하고 회수하는 경험을 했다.
큰 건 아니고, 당근마켓에서 중고로 맥북 샀다. 맥북을 사서 그걸로 개발을 해 돈을 벌면서 투자가 뭔지 처음 배웠다. 회사가 돈을 벌거나 투자를 받아서 리소스를 임대/구매하는 사이클을 점점 크게 만드는 게 사업인 것 같다. 여태까지는 ego를 위해 스타트업 업계에 있었다. 돈을 가져와 팀을 만들고 에셋을 키우는 걸 생각하지 못하고, 창업가 그 근처에 있으면 낭만있고 멋있어 보이니까 그래왔다. 에너지 좋은 사람들이 많기도 했고.
팀
스티브 잡스는 2005년 스탠포드 졸업식 연설에서, 애플에서 해고된 것은 본인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고의 일이었다고 말했다. 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내가 작년 회사에서 쫓겨난 것 역시 큰 행운이었다. 안 그랬으면 계속 애매한 스타트업 파티 피플로 있었을 것이다. 덕분에 정신을 조금 차렸다.
그리고 코로나가 끝난 이후 얼어붙은 벤처 투자 시장은 더 이상 스타트업을 힙하지 않게 만들었다. 이찬혁이 힙합이 안 멋지다고 말했듯..
그럼에도 나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 그리고 가능하면 빠른 시일 내에 동료도 구하고 싶다. 혼자 하려니까 리소스가 너무 딸린다. 비즈니스도 내가 짜고 개발도 내가 하고 외부 파트너도 내가 구하고 홍보도 한다는 당돌한 아이디어는 응원받을 만 하지만, 취미가 아닌 사업이라면 굳이 그럴 이유는 없다. 쫄보가 아니고서야.. 나는 쫄보라서 올 봄부터 그렇게 했다.
22살 무렵부터 사회생활을 하면서 뛰어난 사람들과 어울렸고, 내가 그들처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누군가에게 나라는 사람에, 내 아이디어에 그들의 젊은 시간을 바쳐달라 할 수가 있을까?
근데 여기 북미에 와서 본인들만의 방식대로 마당을 가꾸고, 살림을 꾸리고, 진로를 정하고 사는 사람들에게 나를 비추어 보며 나도 내 삶을 나름대로 경영하고 있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가족 여행으로 왔지만 자꾸 혼자 돌아다니면서 내가 경험해 보고 싶은 것들을 독립적으로 선택하고 있지 않은가.. 미술관 가고.. 굳이굳이 로컬 헬스장 가보고,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말 걸고 친해지고.. 어쩌면 독립적인 회사를 만들고 운영하는 것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잘 할 수 있는 걸 정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유능한 사람들을 꼬셔 보자.
미디어 크리에이터
나는 관심 받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초중고에서는 학생회장 하고, 밴드부도 하고, 응원단장도 하고 그랬다. SNS도 엄청 많이 쓴다. 관심도 받고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어서. 올 초부터는 브이로그도 만들고 협찬과 광고도 받았다. 인스타도 하고 유튜브도 하고 섭스택 뉴스레터도 쓴다. 마이크로 인플루언서라고 불릴 만 하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재밌는 콘텐츠로 가득한 일상을 살고 있다.
하지만 아직 특별한 분야를 정하거나, 기획된 콘텐츠를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건 거의 하지 못했다. 왜 꾸준히 안 하나? 돈을 벌고 더 큰 가치를 만들고 싶은 사람이라면 본격적인 크리에이터에 도전해 볼 만 한데. 내 태도가 애매했다. 관심은 받고 싶은데 혼자 많은 관심을 받으면 나르시시즘에 빠지거나 인터넷 상의 반응에 연연하게 될까봐 두려웠다. 제일 큰 건 “멋지지 못할까봐” 무서웠다.
이제는 좀 본격적으로 하고 싶다. 더 늦으면 많은 걸 놓치게 될 것 같아서. 그리고 여기 와서 다양한 사람들을 보니까 용기가 생겼다. 여긴 bmw 세단 모는 사람도 있고 마쯔다 스포츠 쿠페 모는 사람도 있고 커다란 픽업 트럭 모는 사람도 있다. 각자만의 멋이 있는듯.. 내가 생각하는 멋을 찾아가는 과정을 드러내는 걸 무서워하지 말자. 기록을 남기고, 더 많은 사람과 연결되어야 한다.
오늘도 제 에세이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만간 가슴 뛰는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건강하십쇼!
제가 도울 게 있다면 언제든지 알려주세요 :)
캐나다 캘거리에서, 종한 드림
잘 지내시나요? 예전 디스콰이엇에서 인사드렸던것 같은데 ^^ 안부인사 보내요!!
담백하고 솔직한 글이네요. 그래서 힙하고 멋집니다! 종한님다운 길을 선택하시기를 바라요. 응원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