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일, 부모님과 같이 살던 집을 떠나 대장간으로 이사했다. 망치를 상징물로 가지고 있는 대장간은 프로덕트를 만드는 8명의 창업가들이 모여 사는 집이다. 1인 창업가부터, 이제 막 시작한 초보 창업팀의 리더(이거 나다), 가장 폼 좋은 초기 창업팀의 대표와 핵심 멤버가 모여있다. 나는 대장간에서 사는 동안 많은 변화를 겪었다. 대장간에 있으면서 나는 늘 진취적으로 도전했다. 모두 대장장이들이 주는 안정감 덕분에 가능했던 것 같다. 외동 아들로서, 취미생활을 같이 하고 조언을 주고받는 형제를 가진 친구들을 부러워해 왔다. 6개월 전부터 나에게 큰 힘을 주는 7명의 형제들이 정말 든든하다.
우리는 3개월 단위로 새 대장을 뽑는다. 대장은 임기 중 하우스의 기조를 정하고 실행한다. 또 중요한 의사결정의 우두머리가 되며, 정기 회의를 진행한다. 두달 전, 디스콰이엇에서 독립해 더 작은 팀을 꾸리고 나서, 내가 갈등이나 고민을 겪을 때 늘 대장장이들은 좋은 조언을 주었다. 그리고 내가 대장간의 이름으로 해보고 싶은 것이 있을 때 이들은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었다. 내 상황의 급격한 변화에 따라오는 혼란에 안정감을 주는 건 대장장이들이었다.
한편, 대장간 멤버들이 바빠지면서 하우스 공간이 어지럽혀지고 정신이 없어져 나는 대장간 근처 오피스텔을 렌트해 살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2대 대장이자 룸메이트인 김태훈이 내 말을 듣고는 미친듯이 청소하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대장간 하우스에 텐션이 떨어지고 느슨해진 것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장문의 텍스트를 메신저에 올렸다. 그리고 설문조사를 시작했다. 태훈이의 실행력을 보면서 가슴이 미친듯이 뛰었다. 그래서 결정했다. 오피스텔 렌트 기간이 남았지만 대장간으로 짐을 모두 옮겼다. 나는 이제 대장간과 새 회사 딱 두개에 올인하기로 했다. 이 하우스를 프로덕트 메이커를 위한 최고의 공간으로 만들고, 대장간을 최고의 영향력을 가진 브랜드로 만들 것이다. 어제, 대장간 정기 회의를 겸한 새 대장 선출이 있었고, 내가 새로운 대장이 되었다.
대장간이 나에게 준 가치는 처음에는 뛰어난 퍼포먼스를 내는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긍정적인 자극을 얻고 선의의 경쟁(누가누가 더 폼 미쳤는지)을 하게 되는 것이었다. 모여 산지 6개월 정도가 지나니 서로가 편해졌다. 긴장감은 사라졌다.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은 없고 서로를 향한 정과 따뜻한 응원만이 남았다. 우리는 가족/재미/비즈니스의 성장 이렇게 3가지를 핵심 가치로 삼았었다. 그러나 어떻게 비즈니스의 성장을 서로의 시너지로서 만들 수 있는지는 아직 고민하는 지점이었다. 대장간 위클리가 그나마 그와 가장 align된 활동이었으나, 하우스 멤버들이 각자의 사업으로 바빠지면서 지각하거나 불참하는 인원이 늘어났었다.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래서 대장간의 PM 가인이와 대장간 위클리에 대한 변화들을 시도하고 있다. 또 근본적으로 비즈니스의 성장이 우리가 함께 모여 살아서 얻고자 하는 가치가 맞는지, 그리고 도대체 비즈니스의 성장이란 무엇인지 더 구체적으로 정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어제 정기 회의를 기점으로 우리 하우스의 가치에 대해 재정의하는 걸 시작했다.
새로운 대장으로서, 프로덕트를 만드는 창업가들을 위한 최고의 하우스를 만들기 위한 고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며, 지난 6개월 간 어떤 히스토리를 남겨왔었는지 굵직한 사건들을 되돌아본다:
3월: 그라운드 룰 수립, 1대 대장 홍석범 선출, R&R 수립
2월 말~3월 1일까지 모든 Founding Member가 대장간 입주를 마쳤고 그라운드 룰을 정해 벽에 붙여놨다.
1대 대장으로 선출된 @홍석범 은 하우스의 기틀을 잡는 것을 공약으로 걸었고 충실히 이행했다; 1달에 한 번 진행되는 담금질 데이, 매주 월요일 있는 대장간 위클리가 만들어졌고 가사 시스템이 확립되었다. 이들은 지금까지 잘 지켜져오고 있다.
4월: 첫 담금질 데이, 광인회관을 만나다
@김유빈 의 리드로 한강에 카약타러 갔다. 뛰어갔다. 사장님의 추천으로 맥주 한캔씩과 과자를 싣고 탔는데 명랑해전을 벌이느라 배가 물에 잠기고 맥주가 엎어졌다. 2시간동안 맥주 반신욕을 하면서 노를 저어 건너편 한강 다리를 찍고 왔다.
얘네 에너지 진짜 미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려대 교가 부르면서 노 젓더라.. (주: 대장간의 역사는 안암에서 시작되었다)
광인회관의 코파운더이자 마케팅 테크 스타트업 '마야크루'의 대표이신 준호님을 홍기랑 만났다. 이때만 해도 대장간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사람들에게 '창업가들이 모여사는 집이에요'라고 말하면 다들 광인회관을 떠올렸다.
그래서 광인회관의 비밀을 해킹하러 갔다. 우리도 비거주 멤버십 얼른 해야겠다. 그리고 멤버들이 바빠지면 모이기 힘들다는 광인회관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하고 왔다.
조만간 광인회관이랑 해커톤 또는 풋살 경기 해야겠다.
5월: 대장간 집들이, 무인도(?)로 1박 2일 담금질
드디어 첫 번째 집들이를 했다. 문의는 많았지만 하우스를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그때서야 할 수 있었다. 새삼 멤버들의 네트워크 파워가 엄청나구나 느꼈다. 왜냐면 나는 스타트업 씬에 들어온지 이제 막 1년이 되어가는 사람이었는데 어떤 대장장이는 거의 10년 되어가니까..(대장간 멤버들의 나이대는 꽤 다양하다)
이날은 대장간 거주 후보들만 불러가지고 남성 메이커들만 있다.. 대장간이 늘 남성에게만 열려있는 공간은 아니다.
@신가인의 기획으로 무인도는 아니고 인구가 적은 인천시 소재의 장봉도라는 섬에 다녀왔다. 출발할 때 고기 그릴 챙겼다고 해서 안심했는데 도착해 보니까 불판밖에 없었다. 이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이게 그릴 아니냐며 땅을 파고 돌을 주워오기 시작했다. 고기는 최고로 맛있었다.
이때는 대장간의 맨 파워를 새삼 경험했다. 스타트업 대표 8명이 하니까 장보기던 텐트치기던 뒷정리던 후다다다닥 되었다. 일사천리였다. 대장간에서부터 섬길까지 운전한 석범이가 특히 고생이 많았다.
6월: 태영 합류, 직접 만든 핫도그 200개 나눔, 2대 대장 김태훈 선출
학교를 만들고 싶다는 CTO @김태영 이 대장간에 합류했다. 이 친구는 키가 겁나 크다(190cm 정도 됨). 대장간이 밖에 놀러 나가서 인파 속에 휩싸여도 태영이를 주변으로 모일 수 있다.
대장간의 많은 친구들이 그렇듯 태영이도 스스로를 다스리는 걸 잘 하는 친구다. 한계까지 몰아붙인다. 극한의 성장 환경을 찾아 대장간에 왔다.
매우 빠르게 성장하는 회사의 CTO답게 강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집에 와서 보면 얘는 늘 코드를 쓰고 있거나 글을 쓰고 있다. 매일 수영도 한다.
봉사활동을 꾸준히 해오던 @홍석범 의 제안으로 6월 담금질은 핫도그 200개를 만들어 보육시설에 전달하는 걸로 했다. 핫도그를 만들면서 포드의 컨베이어 공정, 토요타의 JIT 공정을 익혔다.
핫도그를 전달하던 순간 보았던 멤버들의 촉촉한 눈을 잊을 수가 없다. 우리가 왜 열심히 일하고 회사를 키우는지 되새
길 수 있는 값진 시간이었다. 그리고 반성도 많이 했다. 우리는 매우 좋은 환경에서 가치를 좇아 일하고 있다.
2대 대장 태훈이의 미친 실행력으로 대장간 2층 리노베이션이 시작되었다. TV와 소파를 들여놓았다. 멤버 모두가 모인 담금질데이 때 바로 당근을 잡아서 TV와 TV 스탠드, 소파를 매입했다.
2대 대장 태훈이의 공약은 대장간 공간의 청결을 보장하고 활용도를 높이는 것이었다. 임기가 끝나기 직전까지 큰 역할을 해주었다.
덕분에 레임덕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다.
7월: 창업동아리 강연, 보령머드축제 정복
디스콰이엇 네트워킹에서 알게 된 @문정기 님이 연결해주신 인연으로 인하벤처클럽 X 숭실대 SYNERGY가 연 아이디어톤 CONNECT에서 대장간이 강연을 할 수 있었다.
나는 디스콰이엇에서 배운 점과 새롭게 회사를 시작하며 마음에 새겨야 하는 것들을 이야기했고, 태훈이와 가인이가 토크 세션에서 창업가 짬바 가득한 인사이트를 나눠주었다.
보령머드축제 뿌시고 왔다. @김태훈 의 리드로 퀵하게 보령 당일치기 담금질을 했는데, 말 그대로 머드에 담금질을 했다. 진짜 너무너무 재밌었다. '강철머드 챌린지'에서 협동심도 기를 수 있었다.
분위기가 가득 담긴 인스타그램 릴스는 아래 링크에서 볼 수 있다.
8월: 대장간 화덕 파티
가인이의 '피자 드실분' 이라는 글로 시작되어, 50명 넘게 방문한 대장간 화덕 파티가 되었다.
상훈이가 DJ로 와주었고, 디스콰이엇 10X AI Club의 @Cailyn Yong 님 등 반가운 얼굴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앞으로 대장간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 재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