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모님 집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 있고, 나는 첫 인턴을 시작한 후 1년 반 넘게 이곳에서 한남동과 강남으로 출퇴근했다. 지금 살고 있는 대장간에서 토요일 아침에 내려왔는데 2시간 정도 걸렸다. 시골에 오는 기분이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우거진 가로수들이 날 맞이해줬다. 아빠는 전기톱을 들고 나무를 정리하고 있었고, 엄마는 주운 밤을 손질하고 있었다. 평화로웠다.
2/ 4층에 있는 내 방은 정말 넓게 느껴졌다. 엄마는 내가 대장간으로 이사한 뒤 3개월쯤 되자 4층 전체를 쓰던 내 방을 게스트룸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가구 배치를 바꾸고 트윈 침대를 놓았다. 멋진 장식장도 놓고 찻잔과 접시도 전시했다. 큰 커텐도 한가운데에 달았다. 어제는 한 쪽 침대에 누워서 잤는데 방이 정말 넓게 느껴졌다.
3/ 부모님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외동아들인 나에게 최고의 환경을 제공해 주셨다. 분당의 작은 빌라에 살 때에도 내가 제일 큰 방을 쓸 수 있게 내어주셨다. 4년 전에는 용인으로 나와 집을 직접 지을 때 나에게 독립적인 공간을 내어주셨다. 이웃 어른들은 우리 집에 놀러오셔서 신혼집으로 써도 좋겠다는 농담을 늘 하셨고 실제로 내가 간간히 여자친구를 데려와서 놀 수 있게 허락해 주셨다.
4/ 이번에 느낀 건 더 이상 부모님이 만들어주신 이 공간이 나에게 편안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양가 있는 식재료와 과일들로 가득찬 냉장고와 일과 휴식 모두를 위한 좋은 시설이 있지만 나는 서울에서의 삶이 더 편안한 것 같다. 같이 일하는 그리다 친구들과 대장간 형제들이 있고 러닝크루 친구들도 다 서울에 있다. 모든 업무 미팅도 네트워킹도 서울에서 이뤄진다.
5/ 중고등학교 시절이 생각난다. 한 반에 30명씩 10개 반, 3개 학년이 하나의 학교에 있었으니 대략 900명 정도 되는 작은 사회였는데 그 안에서 나와 마음이 잘 통하는 친구를 찾기 어려워 외로워 했던 기억이 난다. 다들 학원에 다녔는데 학원도 PC방도 다니지 않았던 난 친구와 교류할 시간도 마땅치 않았고 말이다. 그때는 닿을 수 있는 사람들의 범위도 좁았고, 사람을 보는 눈도 없었다.
6/ 가홍이 덕분에(첫 인턴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그리고 디스콰이엇 덕분에(대장간을 알게 됨), 대장간 멤버들 덕분에 내가 원하는 사람들과 내가 원하는 관계를 이루며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원하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고 편해질 수 있다.
7/ 서울에 독립하는 것은 단지 출퇴근 시간이 줄어드는 것 그 이상이다. 대장간 옆의 오피스텔을 얻어 3개월 간 살아본 경험도 너무 좋았다. 차도 렌트해보고, 새로운 팀을 만들며 내 임금을 직접 책정해본 것도 신기했다. 자유로움을 느꼈다. 어디에서든 돈을 벌 수 있고, 어디에서든 살 수 있고, 어떤 삶이던 선택할 수 있다.
8/ 사실 이번에 일정을 취소하고 이틀 간 용인에 왔던 것은 이런 변화들 속에서 정신없음을 느껴서 다 멈추고 쉬고 싶어서였다. 근데 막상 오고 나니까 몸은 정말 편한데 형제들과 친구들이 그리웠다. 나는 커뮤니티에서 엄청 많은 에너지를 얻고 있었구나 하는 걸 새삼 느낀다. 그래서 바로 짐을 쌌다.
9/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내가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들, 내가 시간과 에너지를 다 써서 이들을 도와도 전혀 아쉽지 않은 사람들과 더 튼튼한 관계를 구성해야겠다. 애인을 만들어도 좋을 것 같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주는 에너지가 정말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