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외향적이고 예술적인 사람이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이자 심리학을 전공한 형인 Ted Kim에 의하면, 외향적인 사람일수록 도파민에 반응하는 민감성이 높다고 한다. 한편 예술적인 사람일수록 예민하고 내향적이라고.
서울은 늘 바쁘고 붐빈다. 나는 사람들이 주로 출근하지 않는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하지 않는 시간에 퇴근한다. 아침에는 운동하러 가고, 영양소가 가득한 식사를 만들어 먹고, 11시 이후에 사무실로 가서 20시 이후에 퇴근하는 게 내 루틴이다. 곧 9 to 6하는 직장인이 되어야겠지만, 근 3년 간 자유롭게 일할 수 있어서 기쁘고 감사했다. 차를 몰고 운전해서 나가면 동네마다 사람들의 스트레스 지수가 다른 게 느껴진다. 역삼은 매우 빡세다. 차들이 꼬리 물기를 하고 클락션을 크게 울리며 빵빵댄다. 반면 분당 사람들에겐 여유가 있는 것 같다. 차들이 천천히 달리고 웬만해선 클락션 버튼을 누르지 않는다. 그런 동네에서 나고 자랄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서 서울에서 산 지도 2년이 다 되어간다. 서울은 사람들 만나기가 정말 좋다. 서울 어디든 한시간이면 갈 수 있는 교통 인프라가 깔려 있다. 막히지 않는 밤에는 차로 20분이면 서울 어디에든 닿을 수 있다. 새벽 4시까지 사무실이 있는 역삼에서 내가 사는 집 근처까지 오는 심야 버스가 있다.
부모님은 올해 초부터 용인과 후쿠오카를 왔다갔다 하신다. 용인이나 후쿠오카에 놀러갈 때면 나는 늘 따뜻한 사랑과 휴식을 가득 채워서 온다. 나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어느 도시에서 살고 싶냐는 질문을 하는데, 부모님은 늘 도심보다는 자연과 함께하는 교외가 좋다고 하셨다. 아빠의 직장은 판교에, 엄마의 친구들은 분당에 있지만 그들이 굳이 굳이 용인 타운하우스 단지에 집을 지어서 나간 이유를 나는 이제야 좀 알 것 같다.
보조바퀴 달린 네발 자전거를 타던 꼬맹이 시절, 내가 기억하는 주말 아빠의 모습은 안방 벽에 기대어 책을 가슴 위에 올려놓고 조는 모습이었다. “아빠 뭐해?” 하고 물으면 “아빠 생각중” 이라고 답했다. 엄마랑 아빠는 한 번도 언성을 높여 싸우지 않았지만 엄마는 그런 아빠의 모습을 못마땅해 했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안쓰러워 했겠지. 아빠는 그래도 지친 몸을 이끌고 공원에 나가 나랑 공놀이를 해 줬다. 나중에는 보조바퀴를 떼고 두발 자전거를 탈 수 있도록 가르쳐주기도 했다. 나는 지금도 아이스 스케이트를 잘 타지 못하지만 아빠는 뒤로도 탈 수 있다. 스피드 스케이팅을 배웠다고 한다. 암튼 우리 아빠 멋지다.
나는 어릴 때 수영을 잘 못했다. 여타 또래 친구들처럼 초등학교 저학년 때 수영장 강습을 받지 않았다. 내 교육을 전담했던 우리 엄마는 나를 학원 뺑뺑이로 돌리지 않았다. 대신에 11인승 기아 카니발을 사서 동네에서 축구하는 남자애들을 가득 싣고 축구 교실로 실어 날랐다. 그리고 큰 대포 카메라를 사서 나와 친구들 사진을 남겨 주었다. 같이 축구 팀에 다니던 친구들과 워터파크에 다녀와서 “엄마 나도 수영 배우고 싶어!” 라고 말할 때 엄마는 비싼 개인 레슨을 끊어 주었다. 그렇게 2차 성징이 시작되어 인중이 꺼뭇꺼뭇해 질 때 쯤에야 수영을 배웠다. 남들보다 빨리 배웠고 4개월 안에 접영까지 잘 하게 되었다. 우리 엄마는 나를 그렇게 키웠다. 내가 하고 싶어하지 않는 건 시키지 않았다. 대신에 무언가를 하고 싶어하면 최선을 다해 지원했다. 엄마의 수고 덕분에 초등학교 때 나는 이강인 선수와 같은 팀에서 축구 대회에 나갈 수 있었고, 중학생 때는 밴드부 리더를 할 수 있었으며, 고등학생 때는 학생 모델 대회에 나가 런웨이를 걸을 수 있었다. 50대 중반인 엄마는 지금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이다. 나보다 팔로워 수가 20배 많다.
나는 아빠 같은 직장인이 되는 걸 두려워했지만 다행히도 커리어 초반기인 지금까지는 너무나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보통의 또래보다 많은 돈을 벌며(ㅋㅋ)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 똑똑하고 개성 있으며 배려가 넘치는 사람들. 잘 놀지만 어쩔 땐 한없이 진지하고 깊은 사람들. 점점 비슷하면서도 내가 성장하고 싶은 요소들을 가지고 있는 친구/동료들과 어울리게 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올해는 외국인 친구들도 사귀게 되었다! - special thanks to Jae.
유년 시절 늘 학생회장 포지션을 맡아 테이블에서 대화를 주도했지만 예술적이고 내향적이었던 내가, 이십 대 초중반을 겪으면서 어떻게 사람들과 편하게 어울릴 수 있는지 많이 알게 되었다. 꾸미고 포장하려 하지 않고, 더 잘나 보이지 않으려 하고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 요즘은 사람들 만나는 게 많이 편해졌다. 그리고 많은 친구들을 도와주려고 한다. 사진도 찍고, 이벤트도 만들고, 디자인도 하고, 전략도 같이 짜고, 운전도 하고, 뉴스레터 편집장 역할도 하고, 모델도 하고, DJ로서 음악도 튼다.
텐션 높은 사람으로 서울에서 살아남기
그렇게 많은 친구들을 사귀고, 친구들과 재밌는 걸 하다 보니 일정이 정말 많이 생겼다. 서울 곳곳에 좋은 추억도 많이 생겼다. 요즘은 이렇게 지내고 있다:
일주일에 평균적으로 3000장 정도의 사진을 찍는다.
어떤 날은 하루에 약속이 4개씩 있기도 한다.
한달에 평균적으로 20명의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그들의 꿈에 대해 묻는다.
나와 다른 친구들과 새로운 경험을 하면 정말 빠르게 배울 수 있다. 사업가이지만 예술가 자아를 가진 사람으로서, 나는 느끼는 모든 것들을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궁금한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다. 서울 곳곳을 쏘아다니며 요즘은 비즈니스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가로수길 상권에 붙어있는 이 낡은 철물점은 누가 언제부터 어떻게 운영하고 하루에 얼마정도의 매출을 올릴까? 건물주인가?’, ‘신도시 광장 한복판의 이 시계탑 조형물은 얼마 짜리고 어떤 방식으로 입찰해서 누가 설계했을까?’, ‘메가커피에 CJ ONE 포인트를 적립하게 하는 이유는 뭘까? 두 기업이 지분을 섞었나?’, ‘이 넓고 비싼 가구가 있는 아메리카노 5천원짜리 카페는 돈 벌려고 하는 게 아닌 것 같은데.. 오너는 뭐 하시는 분일까?’, ‘이 미술관 전시는 굿즈 판매와 티켓 판매의 이윤 비중이 어떻게 될까?’ 같은 질문들이 하루에도 열 개 넘게 만들어지고 옆에 있는 친구들과 떠든다.
동시에 균형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한다. 사람들 만나서 관계를 넓히는 것과 프로덕트 만드는 능력에 대한 밸런스, 스타트업 안에서의 미시적인 모멘텀과 시장 상황에 대한 거시적인 경제 사이의 밸런스, 내가 자신 있는 것들로 하나씩 실행하며 바텀업 하는 것과 큰 그림을 그리고 자원을 배분하는 탑다운 사고방식에 대한 밸런스, 발산(diverge)하는 것과 수렴(converge)하는 것의 밸런스, 예술가로 사는 것과 사업가로 사는 것 사이의 밸런스 등.
세상에 재미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점점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고, 그들과 편하고 재미있게 어울리며 이해해가는 기술도 점점 늘고 있다. 그러면서 나에 대해서도 많이 알아가게 된다. 그래서 크게 보면,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면서도 충분히 평화롭고 여유로울 수 있는, 정리된 생각을 가질 수 있는 법을 배워나가고 있는 시기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모든 것을 차단하고 산속으로 들어가 ‘도파민 디톡스’를 하는 게 나한테는 자연스럽지 않게 느껴진다.
결론은 아직 텐션 높고, 사람 좋아하는 열정맨이자 아티스트로서 아직 서울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 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근데 배워가고 있음. 지켜 봐야지. 사실 이렇게 바쁘고 정신없이 사는 와중에도 나 자신을 제3자의 관점으로 보면서 노트에 꾸준히 리포팅하고 있다. 최근에는 종종 이별 후 찾아오는 텐션 너무 높아지는 현상에 대해서 들여다 보면서 안정화하는 방법을 찾았다. 직관으로는, 글을 얼마나 많이 써서 발행하느냐로 잘 살아남고 있는지 아닌지를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보통 텐션 높을 때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고(상관관계에 있음), 마음이 평화로울 때 글을 쓸 수 있으니.
그런 의미에서 제 보잘 것 없는 예술가로서의 스타트업 고군분투기를 구독해 읽어주시는 200여분의 뉴스레터 구독자분들께 진심을 담아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누군가 내 글을 읽어주고 관심을 가져준다는게, 정말로 큰 용기와 힘이 됩니다. 덕분에 더 자신있게 나 다워질 수 있어요.
자신감을 가지되, 겸손하고 감사하며 돕고 살겠습니다. 이 글을 읽어주시는 여러분이라면 저와 얼마나 친한지와 관계없이 제 도움이 필요할 때는 알려주세요. 제가 잘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기꺼이 돕겠습니다. 앞으로 친해져요! ㅋㅋ 제가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궁금하신 분은 인스타그램 @jonghan_grida 를 팔로우해주시면 됩니다. DM 주세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서울 광진구의 대장간 하우스에서,
사랑을 담아!
종한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