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에서 나와서 창업하게 되면서, 다른 초기 스타트업에게 질문거나 피드백을 줄 때 고민했던 개념들을 내 문제로서 고민하게 되었다. 요즘 ICP, Moat, Competency, 수익화, Network Effect, Referral 이런 단어들을 많이 쓰게 되는데 그 중 내가 쓰는 Moat(해자)라는 단어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것 같아서 내가 생각하는 Moat에 대해 글을 적어봤다.
중세 유럽 요새의 해자
삼한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한반도에서는 적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산지를 이용해서 산기슭을 따라 높은 성벽을 쌓았다. 남아있는 그 흔적이 서울 성곽이나 남한산성 등이다. 비슷한 시기 유럽에서는 평지에 요새 또는 성을 지으면서 둘레에 호수를 파고 접을 수 있는 다리를 놓아서 적의 침입이 어렵게 만들었다.
IT 사업을 할 때에도 해자는 필요하다. 경쟁자(적)들이 나의 프로덕트/서비스를 잡아먹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해자를 파야 한다. 이 단어는 Uber의 Growth를 담당하다가 현재는 VC인 a16z에 있는 Andrew Chen이 그의 책 “The Cold Start Problem”에서 언급하여 나한테 영감을 준 단어이다.
이 책은 Network Effect를 다룬 명저이니 IT 비즈니스에 관심이 있다면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사실 나도 아직 안 읽었다). 최근 번역본이 출간되었다. 나도 안 읽었으므로 이 글에서 말하는 해자란 내가 생각하는 해자에 대한 개념이다.
초기 스타트업에서 해자란
사실, <The Cold Start Problem>에서 말하는 해자는 어느정도 성장하며 Network Effect를 만든 회사가 경쟁자로부터 사업을 방어하기 위해서 어떤 전략을 펼쳐야 하는지 다룬 내용인데, 나는 초기부터 해자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이다.
초기 스타트업에서의 해자가 중요한 이유는 초기일수록 비슷한 크기의, 비슷한 컨셉의 사업을 하는 경쟁자/협력자들이 많고 이들을 대상으로 경쟁해서 이기거나 설득해서 협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피봇이 자유롭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도 이 아이템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하고, 경쟁자들에 대한 경쟁력이 얼마나 있는지에 대한 지속적인 확신을 가질 필요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면 고객 수와 프로덕트의 완성도가 부족한 초기 팀이 어떻게 해자를 가질 수 있느냐? 팀의 역량이 전부이다. 초기에 컨셉을 뻥튀기해서 마케팅해서 가치를 높이던, 후기에 비싼 팀원들을 데려오던 결국 팀의 역량이 팀의 가치이고, 경쟁력이고, 해자이다. 초기에는 암것도 없으니 당연히 역량이다. 이 역량을 초기에 multiple하는 데 유용한 건 스토리텔링이라는 마법이다.
우리는 어린 시절 각자 음악가, 디자이너, 영상 제작자였는데 결국 tech industry에서 만났다. 근데 한명은 새끈한 제품을 매우 빠르게 만드는 능력이 있고, 나머지 공동창업자 한명은 제품을 파는 걸 너무 즐겁게 해서 그 에너지가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둘이 만나서 digital creator들을 돕는 tech product를 만드려고 한다.
위는 내가 일주일 전부터 합류한 Grida Inc. 의 스토리텔링이다.
해자와 경쟁력
해자와 경쟁력은 비슷한 말인데, 조금 다른 개념이다. 경쟁력은 소비자가 다른 경쟁 제품들 대신 이 제품을 선택하는 이유와 관련이 있고, 해자는 회사 차원에서 다른 회사가 우리 회사를 따라잡지 못하도록 하는 방어 전략에 가깝다.
회사의 경쟁력이 무언가로 굳어지면 그게 해자가 되는 것이다! 이런 예시들이 있을 것이다:
콘텐츠 생산을 유도하는 operation을 잘 해서, 유니크한 콘텐츠가 많이 쌓여서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방문하는 SNS
심리적, 사회적 보상을 잘 설계해 사람들이 스스로 데이터를 입력하도록 해서,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타겟팅 광고를 때리는 플랫폼
다른 어떤 소프트웨어로는 만들 수 없는 고퀄리티의 결과물을 만들 수 있도록 제품 개발을 고도화해서, 비싸지만 professional들이 돈을 내고 쓸 수 밖에 없는 그래픽 소프트웨어
한 번 들어오면 너무나 편안하게 여러 제품을 사용할 수 있는 제품군 생태계를 만들어서, 타사 제품은 구매할 수 없도록 만드는 전자기기 회사
우리 팀의 해자
나는 요즘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 하고 있다:
우리가 정말 만들기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 제품에서 짧은 시간 안에 높은 퀄리티를 보장할 수 있는 측면은 무엇인가? (i.e. 예쁜 디자인, 높은 개발 완성도, 민첩한 고객 요청을 반영한 업데이트 등)
서로가 가장 잘 하고, 가장 시너지가 잘 나는 액션은 무엇인가?
나중에 경쟁자가 따라오지 못하도록 할, 지금부터 쌓아나가야 할 자산은 무엇인가?
해자는 결국 자원 아니면 기술인데, 요즘은 자원으로서는 커뮤니티와 use cases, 기술로서는 우리가 만드는 digital creation engine에 집중하고 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Han, COO of Grida I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