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잘 놀 줄 아는 게 점점 중요해질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술집에서 술마시면서 노는 거 별로 안 좋아한다. (물론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과라면 뭐든 좋다) 러닝크루에도 어떻게 하면 더 재밌게 뛰면서 건강하게 관계를 만들어갈지 고민한다. 그래서 작년엔 우리 크루를 위한 Game-fi 웹앱을 만들었다. 앞으로 AI랑 로봇이 고도로 발전해서 인류의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증가하면 잉여 시간이 많이 남는 사람들은 더 잘 노는 데에 돈을 많이 쓰게 되지 않을까?
‘같이 운동하며 낭만 찾자’ → BBC
올 봄 대장간에서 BBC라는 TF를 만들었다. 제이든의 컨설팅 이후 대장간을 성장시킬 전략으로 콘텐츠를 만들어 배포하는 것을 잡았다. 어떻게 하면 재밌는 콘텐츠 더 만들지? ‘격주로 주말 아침에 모여서 같이 재밌게 운동하고 맛있는 거 먹는 모임을 만들자!’ 대장간 안에 살지 않는 친구들도 게스트로 불러서 같이 하기로 했다. 우리가 프로그램을 정하는 기준은 아래 세가지이다:
1) 텐션 오르는 거
2) 참신한거
3) 혼자는 못하는 거
이 기준에 따라 전에는 크로스핏하고 돌아와서 스테이크 인당 400g씩 구워먹기, 한강공원에서 꼬리잡기하고 돼지고기 먹기 했었다. 이번이 3회차. 3회차에는 뭘 하면 좋을까? 깜깜한 실내에서 EDM 크게 틀어놓고 사람들 모아서 술래잡기하면 재밌지 않을까? 하다가 여자친구한테 혼날 것 같다는 피드백 받아서 수정하기로 했다. 넓은 공원에서 뛰어다니면서 보물찾기를 크게 해보면 어떨까?
일단 이미지부터 만들고 사전예약을 받기 시작했다. 재밌어할 것 같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니 반응이 온다! 그렇게 10명 정도의 신청자가 모였다.
기획, 구현, 오퍼레이션
나는 만드는 걸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다. 틈만 나면 자꾸 웹사이트나 간단한 웹앱 등 뭘 만드려고 하는 편. 이번에도 그냥 보물 숨기고 찾기보다는 약간의 IT 기술을 활용해서 뭔가 만들어서 놀고 싶었다. 마는는 게 나에게는 노는 과정이기도 하고.
처음 아이디어는 QR코드를 활용해서 보물을 찾아서 QR코드를 인식하면 특정 값이 URL에 포함되어 전달되고, 그러면 찾은 보물이 인증되는 방식을 생각했다. 그리고 넓은 공간에서 보물찾기를 할 거니까, 보물 위치가 아주 대략적으로는 보여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참여자들이 보물을 숨기면서 위치를 기록할 수 있도록 만들기로 했다. 대학교 2학년 시절 스마트 시계를 만들면서 GPS 데이터를 활용해본 적이 있어서 대략 어떤 식으로 구성해야 할 지는 감이 왔다.
근데 이제 약간의 이슈 발생. 보물찾기를 하기로 한 주에 일본 후쿠오카의 부모님 집에 다녀왔는데 가서 작업을 좀 해 오려다가 동네 구경만 진탕 하고 왔다. 한국에 돌아와서 짐을 정리하니 남은 시간은 하룻밤. 일단 supabase 테이블부터 파고, nextjs를 셋업한다. 근데 typescript가 생각해보다 어렵다. 아. 시간은 새벽 세시. 그래. 만들기로 한 건 만들어야지. 멋지게 만드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각각 유니크한 값을 담은 QR코드로 보물을 숨기고 인증하려던 건 쪽지에 번호를 쓰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또 보물을 숨기고 찾을 때는 tally라는 폼 서비스를 구글 시트와 연동하도록 하고, 구글 시트의 데이터를 내 20줄짜리 코드가 받아서 mapbox API를 사용한 지도에 띄워주도록 만들었다. 특정 프레임워크 없이 만들어진 이 HTML 파일의 배포는 vercel로 했다. 해당 보물이 찾아지고 찾아지지 않은 것은 구글 시트 함수를 이용해서 특정 ID를 가진 행의 개수가 2개이면 내보내지지 않도록 했다. 이렇게도 작동한다는 게 신기하고 웃겼다. 실제로 게임을 진행할 땐 약간의 이슈가 발생해서 아이폰 구글 시트 앱으로 현장에서 디버깅(?)을 했다.
이렇게 직접 규칙부터 참여 방식까지 기획해서 진행하는 게임을 하다 보면 누군가는 규칙과 사용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설명드렸다. 여러 상황에 대한 예시를 들면서. 게임을 만드는 사람은 참여자들이 플레이 방식을 본인처럼 처음부터 잘 이해할 거라고 착각하기 쉽다. 조심해야 한다.
게임 진행: 잘 된 것, 기대와 달랐던 점, 개선한다면 이렇게
잘 된 것
보물찾기 자체는 재미있었다. 재미있게 숨기고, 정신없이 돌아다니며 찾았다. 운동이라는 목적을 훌륭히 달성했다.
게임 시작 6시간 전부터 만들기 시작한 거 치고는 앱이 문제 없이 작동하였다. 위치도 꽤 정확하게 작동했다.
기대와 달랐던 점
숨겨진 보물을 찾는 게 생각보다 어려웠다. 분명 근처에 있는데 어디에 있는지 못 찾겠는 것도 있더라. 우리 팀은(옐로 팀 짱! ㅋㅋ) 그나마 인당 2개정도씩 잘 찾았는데 다른 팀은 1개밖에 못 찾은 팀도 있었다.
보물을 숨겨둔 구역이 너무 넓었다.
보물 찾는 것의 난이도와 한시간이라는 제한된 플레이 시간에 비해 보물 개수가 너무 많았다.
개선한다면 이렇게
지도 위에 플레이어의 현 위치를 띄워주자.
보물을 숨길 때 사진을 찍어서 올리도록 하고, 찾을 때 마커를 클릭하면 사진을 보여주자(킥보드 앱처럼)
결론
이번 보물찾기를 기획하고 준비하면서 준비 파트너 가인이가 앱 개발 말고 구글맵 사용하는 대안도 충분히 있으니 부담 없이 재밌게 하라는 말을 해줘서 모든 과정을 즐길 수 있었다. 게임 만드는 건 너무 재밌다. 내가 짠 판에서 사람들 경쟁시키는 건 매우 흐뭇하고 짜릿하다. Game-fi 요소를 앞으로 다양한 곳에 린하게 적용해볼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