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회사에 속해 바쁘게 일을 하거나 나의 사업이 크게 굴러가는 중이라면 던지기 어려운 질문이다. 새로운 출발에 앞서, 요즘 나보다 한살에서 다섯살, 많게는 스무살 정도 많은 창업가 형들을 만나게 되면서, 나의 3년, 5년 후는 어떻게 되려나 궁금해하고 있다.
유명세
주변에 바이브 맞는 사람이 적어 외로웠던 어린 시절에는 유명해져서 많은 인기와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살고 싶었다. 내 첫 스마트폰인 갤럭시 S2를 쓰던 중학생 시절, 카카오스토리와 페이스북을 쓰며 많은 좋아요를 받는 것이 그 시절의 꿈이었다. 잘생겨지면 될라나? 웃긴 내용을 올리면 될까? 똑똑해 보이면 될까? 예술 세계를 드러내면 좋을까? 그때는 주요한 고민거리가 그런 것이었다.
작년까지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하면 화려한 삶을 살고, 유명해지고, 인기를 레버리지 삼아 재미있는 프로젝트나 커리어적인 성장을 해볼 수 있을까 생각했다. 많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블로그도 인스타도 많이 하고 모임에도 자주 나갔다. 얼른 인플루언서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도 가졌었다.
지금은 어떤 생각인가? 알맹이가 없는데 너무 유명해져도 문제라는 생각이다. 개인적인 일을 좀 겪기도 했고, 작년부터 너무 많은 유명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걸 보면서 마음이 바뀌었다. 내 이름이 알려지더라도 좀 천천히 알려졌으면 좋겠다. 어쨌든 나는 외롭지 않은 삶을 살고 싶다. PC방에 가는 것보다 집에서 무언가를 만드는 걸 좋아했던, 비슷한 친구가 없어 외롭던 어린 아이는 내 안에 그대로 있다. 공감하고 신뢰하는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를 두텁게 만들고, 그들에게 달고 쓴 소리를 받으며 천천히 자라고 싶다.
나와 스무살 정도의 나이 차이가 있음에도 서로 격의없이 반말을 쓰는 제이든이라는 친구가 있다. 중국에서 브랜드 컨설팅 사업을 오래 하다가, 한국으로 건너와 브랜드의 콘텐츠 마케터로 일하다 지금은 회사를 창업해서 청년들의 커리어 진입을 돕고 있다 ‘프라이퍼’. 이 형이랑 대화를 하다가 크게 깨달음을 얻었다: "SNS에서의 반응에 매달리고, 예민하게 느끼는 사람들은 대부분 가족이나 파트너, 가까운 친구들과의 관계가 안정적이지 못한 사람들이다."
고유성
지난 주말에는 분당지역 고등학교 학생회 연합에 선배로서 진로특강을 하러 다녀왔다. 고등학생 대상의 강의는 오랜만이었다. (나도 내 진로에 대해 잘 모르겠는데, 무슨 진로특강을? ㅋㅋ..) 갑자기 섭외 전화가 왔다. 같은 동네 출신의 창업가 J님께서 강력 추천을 해주셨다며...
8년 전 내가 학생회연합에서 활동하던 시절의 이야기와(그래야 동질감을 가지고 시작할 수 있으니) 그때부터 현재까지의 이야기를 적절히 섞어 내 진로 찾기 여정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좋아하는 친구들과 재미있는 일을 많이 하고 기록으로 남겨서 더 큰 일을 해보고 싶을 때 진정성을 어필하는 자료로 써먹으라는 내용으로. 내 타임이 끝날 무렵 어떤 후배님이 대단히 깊이있는 질문을 해 주셨다. 내가 한 말들 다 좋은데 본질이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종한의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이냐.
나는 본질적으로 내 고유성을 찾아가는 여정에 있다. 2년이면, 아님 5년이면 특이점이 온다고 이야기하는 "대 AI 시대"엔, 나의 고유함이 무엇인지 아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생각할 틈만 나면 맨날 하는 고민이 그거다. 다른 사람들은 하기 싫어하는데 나는 집착하다시피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나의 기질적, 성향적 특징은 무엇인지 그런 생각을 한다. 나만의 고유함을 더 발전시킬 방법에 대해서 많이 고민한다. 운동하고, 음악 틀고, 글 읽고 글 쓰고, 모임 만들고 하는 이유는 어찌보면 다 고유함을 짙고 걸쭉하게 만들어가기 위함이다.
최근 개성 있는 창업가 형들을 일대일로 만나서 좋다. 내가 매력을 느끼는 형들은 예술을 진지하게 해본 경험이 있는 사업가들이다. 철학을 전공하다 SaaS를 만든 형, PM을 하다가 패션과 음악을 하는 형, 청소년기에 소설을 써 입상하다가 교육 사업을 창업한 형, 100만 다운로드 앱 회사의 CSO를 맡았는데 개인적으로 시를 쓰는 형...
나는 매일 두 마리의 말이 끄는 쌍두마차를 모는 기분이다. 퀄리티를 높이고, 대중적이지 않은 걸 좇는 예술가 말. 그리고 빠르게 실험하고, 비용을 따지는 사업가 말이 자꾸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려 하는 것만 같았다. 작년 이맘때쯤에도 비슷한 고민을 했었네. 작년보다 지금, 이게 내 고유성이자 창업가로서의 엣지가 되어줄 거라는 믿음이 훨씬 강하다.
평생의 과업
유년 시절 소설을 썼던 창업가 형은 본인에게 글쓰기란 '평생의 과업'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2년정도 초기 창업가 생활을 하고, 지금은 VC로의 커리어 전환을 준비하고 있는데, 글쓰기는 업에 관계 없이 그냥 평생 하는 거라고.. 평생의 과업이라는 표현이 참 좋았다.
이런 과업들은 낭만적이다. 긴 시간 동안 해야 한다. 그리고 빠르게 돈을 땡기기 쉽지 않다. 데이타임 잡을 하면서 짬을 내어 사이드로 해야만 할 수도 있고, 운이 좋으면 이것과 정렬된 본업을 가질 수도 있다. 내 평생의 과업은 무엇일까? 지금 생각에 의하면.. 사람들을 연결해서 외롭지 않게 하는 것, 그리고 세상을 더 창의적으로 만드는 예술가와 창업가들을 서포트하는 것이다.
엣지
다시 '창업가로서의 엣지' 이야기로 돌아와서, 개발도 하는데 디자인도 하고 예술성이 있다는 건 엣지로 삼을 만 한 것 같다. 사실 그간 '개발자, 디자이너, 포토그래퍼' 중 무엇으로도 스스로를 소개하는 걸 피해왔다. 아마추어라고 생각해서다. 근데 요즘 프리랜싱을 하면서 잘만 키우면 진짜 프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내가 실력을 키우고 싶은 것에 대해서는 프로의 마인드로 대하려 한다. 주어진 상황 안에서 최대한의 퀄리티를 뽑아내려고 한다.
대중, 혹은 잘 모르는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것을 보상으로 두지 않는다면 '기술을 연마하는 것(mastery)'을 동기 삼는 것도 방법. 이렇게 블로그에 글 쓰는 것도, 커뮤니티 플랫폼 만드는 것도, 브이로그 찍는 것도, 바이브 코딩 하는 것도, 사진 찍는 것도, 헬스장에서 운동하며 몸 만드는 것도, 디제잉 하는 것도 계속 하면 조금씩 나아진다. 그리고 좋은 코치를 둔다면 더 빨리 잘해질 수 있다. 배우는 것에 돈을 조금 투자해도 좋다. 해당 스킬이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과 어울리는 자리를 늘리는 중.
엣지를 더 뾰족하게 만들 빙법은? 작게, 자주 배포(ship)하는 것이다. 뭘 자주 만들고 내보여야 한다. 배포까지의 사이클을 자주 돌리면 다음번에 비슷한 작업을 할 때 실력이 좀 늘었다는 기쁨을 느낄 수 있다. 하나의 이벤트/제품/시즌에 대해 노션에 과정의 기록과 결과에 대한 피드백을 잘 적어놓고 있다.
내가 바라는 특별한 미래상이나 정리된 전략은 아직 없다. 원칙들은 이제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몸집을 가볍게 해서 이것저것, 열심히 경험해보면 길이 더 선명히 보일거라 생각한다. 암튼 서른살 되기 전에 레인지로버 사기 같은 것들만 목표로 두곤 했었는데 삶에 대한 고민이 짙어지는 것 같아 좋다.
응원한다. 힘내라.
나도 중학생 때 카카오스토리에 내 공부 일기를 썼었는데 관심받으려고 그런 걸 했었네ㅋ 스킬이 뛰어난 사람들과 자리 늘리는 거 참 좋은 것 같다고 생각